때론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도 많다.

★★★★☆

 

올해 초에 봤던 영화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실재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영화 속 부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종종 아른 거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봐도 좋은 영화였고 두 번째 보았을 때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에 보이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고 영화의 깊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모님께는 영화 속 소피와 같았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애프터 썬 포스터 (반으로 접혀있는 부분이 뭔가 아련하게 다가 옵니다.)

 

영화의 전개는 매우 심플합니다. 이혼으로 인해 따로 살고 있는 아버지 캘럼이 오랜만에 딸 소피를 만나 터키를 여행했던 추억을 현재  어른이 된 소피가 기억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소피의 기억 속 아버지와 함께 한 터키 여행은 평범하기 그지없습니다. 평범한 가족 간 평범한 여행일 뿐입니다. 다만, 영화 속 몇몇 장면에서 아버지의 행동들이 설명이 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불안함이 전달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샬롯 웰스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정보를 전달해 주지 않습니다. 11살 소피의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보여주기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사실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듯이 소피 또한 아버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감독은  타인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정보의 격차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피가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세계를 일련의 사건으로 관객에게 전달합니다만 그 사건들에는 단 한 방울의 감정도 생각도 느낌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전적으로 관객이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되어 버립니다. 마치 추리영화의 범인을 찾듯 우리는 단서를 가지고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예상하고 추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영화 속 소피는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기 직전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춘기가 오기 직전인 나이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사랑보다는 여행지에서 만난 오빠나 언니들의 모습에 더 흥미를 느낍니다. 이 부분으로 인해 소피는 아버지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소피의 눈으로 보는 관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출처 애프터 썬 예고편

 

영화가 막마지에 다다를 무렵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소피 곁을 떠났으리라. 그리고 소피는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해 캠코더를 켰고 자신의 기억 속에서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있는 중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을 추억할 때처럼 말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변형됩니다. 완벽한 기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록과 달리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사실을 장담하기 힘들기 마련입니다. 영화에서는 소피가 기억하는 과거를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뿌옇고 흐릿하게 표현함으로써 우리에게 진한 여운을 줍니다.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 영화로 인해 영화를 보는 깊이가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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