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완성하는 K-스릴러
★★★☆
올해 보았던 영화 중 가장 참신한 영화를 곱으라면 저는 유재선 감독의 '잠'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감독의 반짝이는 연출력으로 승부를 봤던 영화이자 암울한 영화계에 반등의 계기를 만들어준 영화였습니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영화 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가능합니다. 아이를 가진 부부가 겪게 되는 이상한 현상(몽유병? 귀접?)에 대해 실마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부부의 아파트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등장하는 인물 또한 굉장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전개가 빠릅니다. 스릴러/공포물 답게 순간순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많고 영화의 상영시간이 최근 영화들 중 짧은 쪽에 속하기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을 하고 보았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문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남편인 현수는 사실 도망 다니길 선호하는 캐릭터입니다. 단역 배역을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시험을 생각하는 모습,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임신한 아내를 놔두고 따로 자거나 분가를 해서 살겠다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쉬운 쪽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남편뿐만 아니라 아랫집 아주머니, 친정어머니 등 아내 수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쉬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아내는 부부라는 관계에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더 재미있게 흘러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현판의 의미가 참으로 중의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둘이 함께이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일들을 극복하는 것 또한 함께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적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관객의 참여를 요합니다. 우리가 여태껏 보았던 열린 결말의 영화를 한 단계 넘어선 장면을 선사합니다. 결말은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수에게 들어온 아랫집 할아버지 귀신이 실제 떨어져 나갔다는 해석과 배우가 직업인 현수가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연기를 했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후자 쪽의 해석에 더 공감하는 바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위에서 서술한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문구에 더 강력하게 끌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병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가장의 입장에 대입하면 이 가정을 살리는 길은 이 방법 밖에 없겠다는 결심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두 해석 중 어느 해석을 마음속으로 선택하더라도 앞서 감독이 많은 단서를 미리 제시하였기 때문에 어느 해석이든 좋은 해석이 된다는 점입니다. 추리는 수많은 단서를 조합하여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 것이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수많은 단서를 관객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결말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관객으로 인해 이야기가 완성되는 영화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판소리나 풍물과 같은 우리 전통예술이 관객의 참여가 필수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유재선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영화 잠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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