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교양스러웠나

★★★★☆

 

인디아일 리뷰를 진행하기 앞서 이 영화를 알게된 경위부터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써 트랜짓과 운디네에서 주연을 맡았던 프란츠 로고츠키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였기 때문에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헐리웃에서 활동을 하는 배우가 아니라 독일이 주 무대인 배우였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있진 않았습니다만 단 한가지, 인 디 아일이라는 작품을 찾게 되었으니 소소하지만 대단한 시작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 디 아일 포스터

주인공 크리스티안의 취업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어딘가 불편해 보입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온몸에 있는 문신과 착용하고 있는 마트 유니폼은 매끄럽게 매치되지 않습니다. 자세도 조금 부구정해보이구요. 주인공은 마트에서 지게차 운전을 배우며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일을 알려주는 부루노, 매력적인 외모의 마리온 그리고 마트에서 일하는 그밖에 다양한 사람들. 영화는 신참시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크리스티안의 일하는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 줍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향합니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국가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 만큼이나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깁니다. 필연적으로 우리 삶은 일과 직장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미생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생활을 가감없이 보여주어 공감을 얻었던 것 처럼 이 영화도 직장의 소소한 일들을 리듬감 있게 연출해 냅니다. 그러나 미생과는 달리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직장이 아닌 집 또는 가정에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을 다룬 어느 영화보다 인 디 아일에서의 직장은 따뜻하게 묘사되고 심지어 몇몇 인물들의 도피처 역할을 합니다. 현대 사회의 노동자가 겪는 일과 직장이 주는 이미지와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그렇기에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인간이 지니는 근원적인 고독이 느껴집니다. 직장에서의 크리스티안 모습과 달리 집에 돌아와 작은 컵에 차를 마시는 구부정한 모습에서 처량한 느낌과 동시에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화면을 통해 전달됩니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퇴근과 동시에 저마다의 이유로 고독과 쓸쓸함을 느낍니다. 영화는 일을 찬양하기 보다 공동체가 해체된 사회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마트 물건이 진열된 벽을 넘어 소통을 하는 모습이라던지 직원들이 작은 파티를 하는 모습에서 모두가 퇴근 후 맞이할 고독을 조금이나마 해소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영화에서 일이라는 것은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선 그 무엇으로 표현됩니다.

 

개인적으론 좋아하는 것이나 분야가 직업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된다면 무조건적으로 스트레스가 동반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일이라는 행위도 얼마든지 숭고하고 품위있느며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어디든 유토피아가 될 수 있고 파라다이스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하하는 직장생활이 지긋지긋하거나 권태로울 때 보면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ps 독일의 통일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면 영화가 더욱 풍성해지겠지만 굳이 통일 후 동독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모르더라도 이 영화가 주는 짙은 감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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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가 14년 전인데... 

★★☆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고집은 없기에 최근에는 집에서도 OTT를 통해 영화관람을 자주 합니다. 볼 영화를 선정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예고편을 많이 참고하는 편인데 하루가 팍팍했는지라 킬링타임용으로 보이는 한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강동원 배우의 신작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을 본 감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출처 천박사 퇴마 연구소 포스터

영화를 볼 때 영화에 완벽히 몰입을 하여 내용적으로 감독의 연출력을 분석하며 보는 편은 아닙니다. 또한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 있거니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로 구분하는 것도 그 다니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이하 '천박사')라는 영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제가 이야기할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예전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나오는 오락영화와 결이 비슷하여  킬링타임으로는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오늘 하루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영화였습니다. 영화 내용이 관객으로 하여금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거나 감정적 소모가 큰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라면을 먹으면서 보던지 다른 일을 하면서 봐도 무난한 영화였습니다. 오락영화라 하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모든 영화가 인상을 쓰며 어두운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으니 말입니다. 강동원 배우는 훌륭한 비주얼을 바탕으로 한 개그 연기가 일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천박사에서의 연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동휘 배우도 개그에 적합한 연기를 잘하는지라 두 남자배우의 캐미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영화의 인상이 다른 영화와 어딘가 묘하게 겹칩니다. 전우치의 현대판으로 보면 될까요? 그것도 아니면 마동석 배우의 범죄도시를 오컬트 적으로 제해석했다고 말해야 할까요? 적당한 개그를 포함한 전개와 악당을 호쾌하게 물리치는 구성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강동원 배우의 천박사에서의 연기는 전우치의 느낌이 났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을까요? 분명 저는 강동원 배우의 전작 전우치라는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해진 배우의 초랭이가 가진 비밀이 나오는 개그코드도 아직 머릿속에서 생생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무려 14년 전의 느낌을 지금 다시 느낀다는 것은 이 영화의 단점이 되는 요소인 듯합니다. 이미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전우치에 비해 이번 영화가 예측가능한 이야기 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출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예꼬편 (기생충의 부부가 특별출연합니다.)

그리고 악역인 범천과 그 무리가 갈피를 못 잡는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범천은 무언가 깊고 강렬할 악당의 느낌이 나면서도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가벼워 선과 악의 대결에서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주인공 무리가 범천을 물리칠 때에도 긴장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주인공 능력이 버프가 되면 악역이 되는 캐릭터도 치밀할 필요가 있는데 말입니다. 

 

감상을 마무리하자면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 좋은 영화였고 예능프로그램 같은 재미있는 오락영화였습니다. 좋은 연기와 무난한 이야기 전개로 불편함 없이 볼 수 있었던 영화였기에 오늘 하루의 복잡했던 머리를 비우기 좋았습니다.

 

ps 영화의 놀라운 점은 쿠키영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후속 편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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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완성하는 K-스릴러

★★★☆


올해 보았던 영화 중 가장 참신한 영화를 곱으라면 저는 유재선 감독의 '잠'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감독의 반짝이는 연출력으로 승부를 봤던 영화이자 암울한 영화계에 반등의 계기를 만들어준 영화였습니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영화 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가능합니다. 아이를 가진 부부가 겪게 되는 이상한 현상(몽유병? 귀접?)에 대해 실마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부부의 아파트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등장하는 인물 또한 굉장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전개가 빠릅니다. 스릴러/공포물 답게 순간순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많고 영화의 상영시간이 최근 영화들 중 짧은 쪽에 속하기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을 하고 보았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문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남편인 현수는 사실 도망 다니길 선호하는 캐릭터입니다. 단역 배역을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시험을 생각하는 모습,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임신한 아내를 놔두고 따로 자거나 분가를 해서 살겠다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쉬운 쪽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남편뿐만 아니라 아랫집 아주머니, 친정어머니 등 아내 수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쉬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아내는 부부라는 관계에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더 재미있게 흘러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현판의 의미가 참으로 중의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둘이 함께이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일들을 극복하는 것 또한 함께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적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관객의 참여를 요합니다. 우리가 여태껏 보았던 열린 결말의 영화를 한 단계 넘어선 장면을 선사합니다. 결말은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수에게 들어온 아랫집 할아버지 귀신이 실제 떨어져 나갔다는 해석과 배우가 직업인 현수가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연기를 했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후자 쪽의 해석에 더 공감하는 바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위에서 서술한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문구에 더 강력하게 끌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병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가장의 입장에 대입하면 이 가정을 살리는 길은 이 방법 밖에 없겠다는 결심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두 해석 중 어느 해석을 마음속으로 선택하더라도 앞서 감독이 많은 단서를 미리 제시하였기 때문에 어느 해석이든 좋은 해석이 된다는 점입니다. 추리는 수많은 단서를 조합하여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 것이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수많은 단서를 관객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결말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관객으로 인해 이야기가 완성되는 영화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판소리나 풍물과 같은 우리 전통예술이 관객의 참여가 필수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유재선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영화 잠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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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About Time) 아름답고 아련한 어른 동화

★★★★

 

2023년의 마지막 달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어느덧 달력은 마지막장만을 남겨두었고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저에게 마냥 즐거운 기분만 주지 않는다는 점이 청춘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연말과 연초를 사이에 둔 이 시기에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 리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다룬 어른동화 어바웃 타임입니다.

 

어바웃 타임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3년에 개봉한 영화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리라 예상합니다. 10년 전 영화를 생각날 때마다 찾아보곤 하는데 볼 때마다 드는 감정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면 이 영화 역시 훌륭한 영화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좋은 책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시사점을 주듯이 말입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타임리프라는 소재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 페이지는 연인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뒷 페이지는 가족 간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나누면 훨씬 이야기가 선명해집니다. 

어바웃타임 영화 포스터 (마침 영화도 12월에 개봉을 했었네요.)

우리는 후회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후회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장면으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영화 속 팀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싶을 땐 항상 시간을 되돌아갑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으론 모든 것을 할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샬럿에게 한 고백은 실패했습니다. 아마도 샬렷의 마음에는 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리는 달랐습니다. 이미 '능력'을 사용하기 전 호감이 있었고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팀은 놓치고 싶지 않았고 사랑을 쟁취해 냅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은 가족의 문제 앞에선 무용지물입니다. 여동생의 문제를 해결하자니 자신의 딸의 모습이 바뀌어 버렸고 아버지는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폐암임에도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단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시간을 되돌아 간들 선택을 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에 매몰된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발견한 혹은 알아챈 비밀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자세에 달려있었습니다. 힘든 하루를 보낸 아들에게 시간을 되돌려 다시 똑같은 하루를 보내게 합니다. 힘들고 정신없고 짜증이 났던 하루를 다시 살아보니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마음이 여유롭고 사람들에게 친절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능력'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김구 선생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을 어린 시절의 아들 모습으로 보내는 것 또한 너무나도 훌륭한 마무리였습니다. 모든 부모들의 희망을 대변하듯 어린 시절 애틋한 부자간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합니다. 

 

이 영화는 단점이 없는 영화가 아닙니다. 전개가 허술하고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시간을 주제로 만든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아련하며 환상적이기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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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도 많다.

★★★★☆

 

올해 초에 봤던 영화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실재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영화 속 부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종종 아른 거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봐도 좋은 영화였고 두 번째 보았을 때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에 보이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고 영화의 깊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모님께는 영화 속 소피와 같았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애프터 썬 포스터 (반으로 접혀있는 부분이 뭔가 아련하게 다가 옵니다.)

 

영화의 전개는 매우 심플합니다. 이혼으로 인해 따로 살고 있는 아버지 캘럼이 오랜만에 딸 소피를 만나 터키를 여행했던 추억을 현재  어른이 된 소피가 기억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소피의 기억 속 아버지와 함께 한 터키 여행은 평범하기 그지없습니다. 평범한 가족 간 평범한 여행일 뿐입니다. 다만, 영화 속 몇몇 장면에서 아버지의 행동들이 설명이 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불안함이 전달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샬롯 웰스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정보를 전달해 주지 않습니다. 11살 소피의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보여주기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사실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듯이 소피 또한 아버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감독은  타인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정보의 격차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피가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세계를 일련의 사건으로 관객에게 전달합니다만 그 사건들에는 단 한 방울의 감정도 생각도 느낌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전적으로 관객이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되어 버립니다. 마치 추리영화의 범인을 찾듯 우리는 단서를 가지고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예상하고 추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영화 속 소피는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기 직전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춘기가 오기 직전인 나이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사랑보다는 여행지에서 만난 오빠나 언니들의 모습에 더 흥미를 느낍니다. 이 부분으로 인해 소피는 아버지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소피의 눈으로 보는 관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출처 애프터 썬 예고편

 

영화가 막마지에 다다를 무렵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소피 곁을 떠났으리라. 그리고 소피는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해 캠코더를 켰고 자신의 기억 속에서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있는 중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을 추억할 때처럼 말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변형됩니다. 완벽한 기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록과 달리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사실을 장담하기 힘들기 마련입니다. 영화에서는 소피가 기억하는 과거를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뿌옇고 흐릿하게 표현함으로써 우리에게 진한 여운을 줍니다.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 영화로 인해 영화를 보는 깊이가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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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 서린 외로움이란 감정, 하지만 체온은 36.5도.

★★★★

 

 2021 전주 국제 영화제 출품작 혼자 사는 사람들은 홀로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삶을 세밀하고 농도 짙게 표현합니다. 도시에서 1인 가정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비교적 담백하게 그려내는 영화인데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출처 혼자 사는 사람들 공식 예고편

 

주인공 유진아는 매일 같은 루틴을 지키며 착실히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진아의 삶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가족 간 유대가 부족하고 그 흔한 직장동료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없으며 늘 혼자 있으면서 혼자가 편해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녀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며 심지어 점심메뉴도 항상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또한 감정노동을 하는 직업으로 인해 일이 힘들 법 함에도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진아의 고요한 삶은 수진의 등장으로 인해 소용돌이칩니다. 후배인 수진은 진아에게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변인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수진은 진아가 루틴처럼 지켜온 생활에 자꾸만 들어오려 하고 진아는 수진의 이러한 모습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마치 관계를 맺음에 있어 창과 방패 같은 느낌입니다. 영화 속 창과 방패의 승부에서 결국 진아의 방패가 이기고 수진은 상처를 입은 채 일을 그만둡니다. 

 

문득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제안을 하는 수진. 출처 혼자 사는 사람들 공식 예고편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이후의 전개에 있습니다. 오히려 수진의 빈자리로 인해 진아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나 성가시고 귀찮았던 수진이 없어졌건만 진아의 일상은 어딘가 모르게 삐그덕 거립니다. 진아의 단단한 방패로 수진의 창을 그렇게나 잘 막아왔건만 창에 찍힌 방패에 자그마한 틈이 벌어지더니 방패로 막아오던 유진의 고독과 외로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홍성은 감독은 우리에게 정말 완벽하게 남이라고 부를 수 있는 타인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옆집남자의 죽음에도 한눈팔지 않고 상관없는 척, 모른 척을 하는 진아였지만 내심 복도에 있는 재떨이를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전과 달리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이 우선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과연 완벽한 개인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감독은 진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진아와 수진 모두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2002년 월드컵을 보내던 우리는 수진과 같았다면 약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진아와 같이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속칭 '괜찮다'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 진아와 같이 늘 불안 속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어 볼 때 과연 괜찮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수진으로도 잘 살아왔었으니깐요.

 

겨울이 다가와 부쩍 추워진 요즘, 차갑고 고독하고 외롭기에 오히려 따뜻해질 수 있었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ps 주인공 역할인 공승연 배우의 화려한 외모는 아무리 짜증 내고 화를 내고 무표정을 지어도 (제 기억으론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가릴 수 없었습니다. 단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배우의 외모로 인해 작중 유진아라는 인물의 행동과 말이 비호감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워할 순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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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든 시간은 아름답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합니다. 한일 양국 간의 역사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무언가를 좋아합니다. 일본 공항에서 풍겨오는 살짝 짭짤한 냄새부터 조용하고 정돈된 도시 분위기. 오래된 것들을 대하는 자세를 특히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저의 취향을 100% 반영한 영화였습니다.

 

영화 포스터

도쿄의 구석구석을 배경으로 하여 진행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 케이코가 아침마다 스트레칭과 러닝을 하는 강가의 공원과 퇴근 후 복싱 체육관으로 향하는 동선 등 장소에 대한 애정이 카메라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엇보다 체육관이 풍겨오는 느낌은 저에게 너무나도 깊은 향수를 자극합니다. 아날로그의 집합체인 복싱 체육관의 모습에 제가 어릴 적 운동했던 반지하의 낡은 유도관이 불쑥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 복싱 체육관이 문을 닫게 되는데 왠지 모를 씁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케이코 이외에도 이 복싱 체육관에 많은 관원이 존재하지만 주인공만큼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는 선택의 폭이 넓어서이지 않나 예상합니다. 아마도 청각장애인인 주인공에겐 복싱은 이 장소에서만 가능한 운동이 아니었을까요.

 

장소감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시간을 다루는 모습은 타 영화에 비해 사뭇 다릅니다. 복싱과 관련된 영화로 말하자면 대부분 록키의 모습처럼 운동> 좌절> 시합> 승리와 같은 전개를 따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복싱에 관한 이야기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 집에서 보내는 시간,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시간이 균등하게 그려지는 이 영화를 보면 마치 우리 삶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들게 합니다. 아무리 좋아하고 즐거운 것도 일을 제쳐두고 할 수 없는 현대인을 투영하듯 영화는 아주 공평하게 케이코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은 아름답습니다.

 

제가 꼽는 명장면이라고 한다면 병원에서 보여주는 회장님(체육관 관장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도쿄 도심의 체육관은 오래된 것을 대표하는 장소입니다. 회장님은 오래된 복싱 체육관의 잊히는 존재이고 이러한 잊히는 모든 것들을 보내는 감독의 태도가 따뜻하면서도 처연한 감정을 들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 빨리 앞으로 나가는 것은 아닐지 곱씹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준비운동을 하는 케이코와 회장님 출처 영화 예고편

 

이 영화에서 처음 접한 키시이 유키노라는 배우는 청각장애인 복서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언어적 표현을 전혀 하지 않고도 주인공 케이코가 어떤 생각인지 그리고 어떤 감정인지 전달이 잘 되었기에 보는 내내 이질감 없이 케이코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단단하고도 고집스러운 케이코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참고로 키시이 유키노는 이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이상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영화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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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창작의 고통, 현실의 고통을 잊다.

★★★★☆

거미집 포스터

 

늦게나마 올해 최고의 영화 거미집을 리뷰하려고 한다.

70년대 감성을 담은 이 영화가 ( 11월 말 기준) 올해의 최고작이 되리라곤 생각 못한 일이었다. 김지운 감독 영화의 스펙트럼이 거미집으로 인해 한층 두터워졌음을 느끼게 해준 걸작이었다.

액자식 구성으로 자칫하면 복잡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시공간의 제약을 두어 (하루라는 시간, 세트장이라는 공간) 단순하고 명쾌하게 들려준다. 촬영현장은 컬러로 영화속 영화장면은 흑백으로 처리한 것도 훌륭했다.

 

송강호의 연기는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특히 정수정(크리스탈)의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영화배우 정수정의 대표작으로 손색없는 연기였다. 특히 최국장 앞에서 한유림의 연기를 하는 정수정의 모습은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마지막 장면의 송강호 표정은 어디선가 많이 봄직한데, 살인의 추억의 형사 얼굴과 비슷하면서 다른 느낌을 준다. 

살인의 추억이 벌써 20년전이라니... 송강호 배우도 많이 젊다.

 

영화관의 표정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모두들 걸작을 맞이하며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가운대 뭔가 쓸쓸하고 처연한 표정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어찌할 수 없는 재능의 한계를 느낀건 아닐까 생각해봄직하다. 이토록 발버둥 쳤지만 천재감독인 신감독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제자의 한이 서린 느낌이었다. 

 

그렇게나 맞이하고 싶어했던 순간이었건만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속으로 울고있을 김열의 표정이

70년대의 순수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ps 전여빈 배우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 선머슴역할로 나오기엔 선이 너무 예쁜감도 있더랬다. 아쉽다.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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