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기 서린 외로움이란 감정, 하지만 체온은 36.5도.

★★★★

 

 2021 전주 국제 영화제 출품작 혼자 사는 사람들은 홀로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삶을 세밀하고 농도 짙게 표현합니다. 도시에서 1인 가정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비교적 담백하게 그려내는 영화인데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출처 혼자 사는 사람들 공식 예고편

 

주인공 유진아는 매일 같은 루틴을 지키며 착실히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진아의 삶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가족 간 유대가 부족하고 그 흔한 직장동료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없으며 늘 혼자 있으면서 혼자가 편해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녀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며 심지어 점심메뉴도 항상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또한 감정노동을 하는 직업으로 인해 일이 힘들 법 함에도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진아의 고요한 삶은 수진의 등장으로 인해 소용돌이칩니다. 후배인 수진은 진아에게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변인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수진은 진아가 루틴처럼 지켜온 생활에 자꾸만 들어오려 하고 진아는 수진의 이러한 모습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마치 관계를 맺음에 있어 창과 방패 같은 느낌입니다. 영화 속 창과 방패의 승부에서 결국 진아의 방패가 이기고 수진은 상처를 입은 채 일을 그만둡니다. 

 

문득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제안을 하는 수진. 출처 혼자 사는 사람들 공식 예고편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이후의 전개에 있습니다. 오히려 수진의 빈자리로 인해 진아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나 성가시고 귀찮았던 수진이 없어졌건만 진아의 일상은 어딘가 모르게 삐그덕 거립니다. 진아의 단단한 방패로 수진의 창을 그렇게나 잘 막아왔건만 창에 찍힌 방패에 자그마한 틈이 벌어지더니 방패로 막아오던 유진의 고독과 외로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홍성은 감독은 우리에게 정말 완벽하게 남이라고 부를 수 있는 타인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옆집남자의 죽음에도 한눈팔지 않고 상관없는 척, 모른 척을 하는 진아였지만 내심 복도에 있는 재떨이를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전과 달리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이 우선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과연 완벽한 개인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감독은 진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진아와 수진 모두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2002년 월드컵을 보내던 우리는 수진과 같았다면 약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진아와 같이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속칭 '괜찮다'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 진아와 같이 늘 불안 속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어 볼 때 과연 괜찮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수진으로도 잘 살아왔었으니깐요.

 

겨울이 다가와 부쩍 추워진 요즘, 차갑고 고독하고 외롭기에 오히려 따뜻해질 수 있었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ps 주인공 역할인 공승연 배우의 화려한 외모는 아무리 짜증 내고 화를 내고 무표정을 지어도 (제 기억으론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가릴 수 없었습니다. 단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배우의 외모로 인해 작중 유진아라는 인물의 행동과 말이 비호감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워할 순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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