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 시간은 아름답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합니다. 한일 양국 간의 역사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무언가를 좋아합니다. 일본 공항에서 풍겨오는 살짝 짭짤한 냄새부터 조용하고 정돈된 도시 분위기. 오래된 것들을 대하는 자세를 특히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저의 취향을 100% 반영한 영화였습니다.
도쿄의 구석구석을 배경으로 하여 진행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 케이코가 아침마다 스트레칭과 러닝을 하는 강가의 공원과 퇴근 후 복싱 체육관으로 향하는 동선 등 장소에 대한 애정이 카메라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엇보다 체육관이 풍겨오는 느낌은 저에게 너무나도 깊은 향수를 자극합니다. 아날로그의 집합체인 복싱 체육관의 모습에 제가 어릴 적 운동했던 반지하의 낡은 유도관이 불쑥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 복싱 체육관이 문을 닫게 되는데 왠지 모를 씁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케이코 이외에도 이 복싱 체육관에 많은 관원이 존재하지만 주인공만큼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는 선택의 폭이 넓어서이지 않나 예상합니다. 아마도 청각장애인인 주인공에겐 복싱은 이 장소에서만 가능한 운동이 아니었을까요.
장소감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시간을 다루는 모습은 타 영화에 비해 사뭇 다릅니다. 복싱과 관련된 영화로 말하자면 대부분 록키의 모습처럼 운동> 좌절> 시합> 승리와 같은 전개를 따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복싱에 관한 이야기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 집에서 보내는 시간,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시간이 균등하게 그려지는 이 영화를 보면 마치 우리 삶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들게 합니다. 아무리 좋아하고 즐거운 것도 일을 제쳐두고 할 수 없는 현대인을 투영하듯 영화는 아주 공평하게 케이코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은 아름답습니다.
제가 꼽는 명장면이라고 한다면 병원에서 보여주는 회장님(체육관 관장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도쿄 도심의 체육관은 오래된 것을 대표하는 장소입니다. 회장님은 오래된 복싱 체육관의 잊히는 존재이고 이러한 잊히는 모든 것들을 보내는 감독의 태도가 따뜻하면서도 처연한 감정을 들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 빨리 앞으로 나가는 것은 아닐지 곱씹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처음 접한 키시이 유키노라는 배우는 청각장애인 복서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언어적 표현을 전혀 하지 않고도 주인공 케이코가 어떤 생각인지 그리고 어떤 감정인지 전달이 잘 되었기에 보는 내내 이질감 없이 케이코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단단하고도 고집스러운 케이코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참고로 키시이 유키노는 이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이상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영화 리뷰였습니다.